참가자 통계 (1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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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우리말 겨루기]를 보다 보면 누가 이길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. 아직 한 문제도 풀지 않았을 때는, 먼저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점찍어 볼 수도 있다. 예컨대 “홍길동 씨는 20대, 젊어서 뇌가 빨리 돌아가니까 잘 풀지 않을까?” “성춘향 씨는 꼴찌만 면한다는데, 오히려 이렇게 겸손한 사람들이 잘할지도 몰라.” 생각하는 식이다. 그런 생각으로 보다 보니 궁금해졌다. 특정 나이나 성별을 가진 사람들이 [우리말 겨루기]에서 더 잘할까? 더 잘하는 집단이 있다면, 그 집단은 어떤 집단일까?

데이터는 다음과 같이 모았다. 2017, 2018, 2019년의 회차 가운데 (1) 연예인이 출연하는 회차가 아닌 일반 회차이며 (2) 개인이 겨루는 회차를 모았다. 조건을 만족하는 회차는 총 96개였다. 참가자는 한 회차에 4명이므로 96 곱하기 4 = 384명을 분석할 수 있었다.

성별

[우리말 겨루기]에는 남녀가 거의 항상 동수로 등장한다. 분석한 96개의 회차 가운데 8개만이 1:1의 성비가 아니었다 (여초가 6회1, 남초가 2회2). 그러니 남녀가 참여한 비율도 거의 같다:

그러면 여자와 남자의 승리 비율도 비슷한가? 그렇지는 않다. 여자가 더 자주 이긴다:

세로축의 ‘승리 확률’이 의미하는 바는, 임의의 여성 참가자를 골랐을 때 해당 여성 참가자가 참가 회차에서 우승했을 확률이 y%라는 것이다. 여성과 남성 참가자의 실력이 완전히 똑같다면 남녀 출연 비율은 사실상 동일하므로 둘 다 우승 확률이 1/4=25%여야 하는데, 그렇지 않은 것이다.

재밌는 것은 성별 간의 차이가 연도별로 큰 변이도 없이 굉장히 안정적이라는 점이다. 2017, 2018, 2019년에 대해 똑같은 분석을 한 결과를 붙여서 보면 서로 거의 차이가 없고, 위에서 보인 전체 추세와도 구분하기 힘들다.

왜 그런 걸까? 속설대로 ‘여자는 언어능력이 더 뛰어난’ 걸까? 추측은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[우리말 겨루기] 데이터를 이용해서는 ‘[우리말 겨루기]에서는 여자가 이기는 회차가 60% 정도 되더라’는 결론 이상을 얻기 어렵다.

나이

나이의 다양함 또한 [우리말 겨루기]를 재밌게 해주는 요소다. 분석한 자료 중에는 최고령이 81세, 최저령이 15세였다. 그만큼 여러 연령대의 사람이 참여하는데, 어떤 연령의 사람이 제일 잘하는지도 흥미로운 질문거리다. 20대가 제일 순발력이 좋은 나이이니 20대가 잘할 것 같기도 하고, 또 한편으로는 60대 이상은 일생에 걸쳐 한국어를 20대보다 2~3배가량 더 많이 써왔고 상대적으로 외래어를 덜 썼기 때문에 [우리말 겨루기]는 더 잘할 것 같기도 하다.

먼저 전체 참가자의 나이 분포를 보자.

[우리말 겨루기]를 꽤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, 20대와 30대가 제일 많이 출연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. (항상 “생각보다 많이 출연하네” 정도로만 치부했다.) 평균 수명은 여자가 더 높은데 70대 참가자 가운데서 오히려 남자 참가자의 비율이 높다는 것도 흥미롭다.

어느 그룹이 제일 많이 이길지 예상이 되는가? 정답은…

20대도 아니고 60대도 아니고 40대다! 이 분석에서 40대는 대략 60년대 말, 70년대 초중반에 태어나신 분들이다. 40대 출연자의 승리 확률은 30%로, 평균보다 5%p 높다.

나이의 효과가 성별별로 다를 수도 있으니, 성별별로 따로 분석해보았다.

결과에서 드러나는 대로, 여성 참가자와 남성 참가자의 통계가 제법 다르다. 여성 참가자들은 20대와 40대에서 제일 승률이 높지만 (40대 여성의 승률은 40%에 육박한다), 남성 참가자의 승률은 60대가 제일 높다.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바는 사실 40대의 높은 승리 확률은 여성 참가자들이 다 견인했고, 40대 남성들은 평균적인 남성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.

참가자 다짐

[우리말 겨루기]를 진행하는 엄지인 아나운서는 참가자들에게 “몇 등 할 것 같으세요?”라고 묻곤 한다. 참가자들의 답변은 “달인이죠!” 부터 “꼴찌만 면하고 싶어요”, 혹은 “상품권만 타면 됩니다”까지 다양하다. 겸손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 잘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 정말 잘하기 때문일까, 아니면 겸손한 이미지와 상반된 실력을 보여주기 때문일까? 목표 등수가 승률이 상관관계가 있는지 알아보자. 3

말이 씨가 된다고, 목표를 1등이라고 말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더 잘한다. 40대나 여성인 것보다 강한 ‘승리의 신호’로, 거의 35%의 승률을 자랑한다. 물론 1등이 승률이 높은 게 정말 말이 씨가 되기 때문은 아니지만, 승률이 높다고 하니 만약 출연한다면 1등을 외치고 보면 좋지 않을까? 성별이나 나이는 금방 바꿀 수도 없는 마당이니 말이다.

ㄱ, ㄴ, ㄷ, ㄹ 위치

참가자들은 ㄱ부터 ㄹ까지 촬영장의 정해진 위치에서 자리를 바꾸지 않고 문제를 푼다 (자물쇠 문제 전까지는). 언젠가 읽은 참가 후기에서는 ㄱ과 ㄹ 위치가 문제가 잘 안 보인다길래, 과연 그런 가시성의 문제가 승률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.

ㄱ이 제일 잘한다. 그것도 꽤 큰 차이로 더 잘한다! 왜 그럴까? 통계상의 노이즈는 아닐까?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4 성별과 마찬가지로 2017, 2018, 2019년의 자료를 따로 분석하여 ㄱ이 잘하는 일관적인 경향이 있는지 살펴보았다.

ㄱ이 일관적으로 더 좋은 성적을 보여준다!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, 어쩌면 먼저 첫소리 문제를 고를 수 있다는 점이 유의미할지도 모른다. 어떤 해에는 특정 위치가 정말 저조한 성적을 보이기도 하는데 (2017년의 ㄹ, 2018년의 ㄷ), 이걸 통계적으로 분석하면 저만큼 못한 건 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. 5 역시 2017년의 촬영장 상태를 모르고서는 뭐라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운 듯하다.

긴 글에 걸쳐서 다양한 요소가 승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해봤다. 다음 참가자 분석 글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, 성별과 나이별로 최종 점수 분포는 어떠한지, 어떤 어휘를 잘 맞추는지를 분석해볼 예정이다.